굳게 닫힌 제당(祭堂). 문 앞에선 마을 사람들이 남자들의 출입을 막아선다. 의식을 취재하러 온 사진가도, 외지 학자들도 예외는 없다. 투박하게 엮인 나무 기둥 뒤, 오키나와 북부 네로메(根路銘) 마을 제당 안의 성소 ‘이비'(イビ)는 철저히 여성만의 공간이었다. 1988년 여름이었다.

나무로 엮인 제당 앞에 나란히 선 네 명의 여성 중 제일 왼쪽이 이날 입무(入巫)하게 되는 오시로 에이코 씨다. 의식을 맡은 여성들이 의례에 쓰일 검을 들고 함께 사진 촬영에 응했다.
당 안에서는 에이코 씨가 무릎을 꿇고 앉으면 신병의 고통을 끊어내고 신의 사제인 ‘가민츄(神人, かみんちゅ)’로 거듭나는 입무식(入巫式)이 시작된다. 류큐 왕국 시절부터 오키나와에서는 남자가 정치를, 여자가 제사를 맡아 왔다. 정치 권력은 남성에게, 종교 권력은 여성에게 나뉘어 있던 독특한 이원 구조다. 남성들의 제당 출입이 금지된 이유다.
그 배경에는 '오나리가미'(おなり神)라 불리는 오키나와의 신앙 체계가 있다. 여성(특히 자매)이 짙은 영적 힘을 지니고 혈연 공동체와 남성(남자 형제)을 수호한다는 것이 오키나와섬 사람들의 강한 믿음이다. 이에 따라 마을 대소사를 관장하는 니즈츄(根人)는 남성이지만, 신과 소통하며 제의를 집전하는 니가미(根神)나 노로(ノロ) 같은 사제는 반드시 여성이 세습하게 된다.
입무식의 풍경을 보면 한국의 내림굿이 연상되는 부분도 있다. 평범한 인간의 때를 벗고 신의 세계로 진입하는 첫 단계이기 때문에 우선 신이 내리는 새 무당이 머리부터 씻고 단장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선배 가민츄가 맑은 물로 에이코 부인의 머리를 감기고 정갈하게 빗겨 비녀를 꽂아 묶었다.

이어서 선배 가민츄는 낡은 검을 꺼내 든다. 이 검으로 에이코 씨의 어깨를 번갈아 누르고 허공을 가른다. 잡귀를 물리치고 모셔야 할 신만 받아들이라는 주술적 행위다. 한국 내림굿의 비수거리에서 장군칼을 휘둘러 액을 막고 잡신을 쳐내는 의식이 또 한 번 떠오른다.
에이코 부인은 1987년부터 살이 빠지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앓아누웠다. 백방으로 노력해도 차도가 없자 개인의 운명을 점치고 질병을 다루는 '유타'(ユタ)를 찾아갔다. 유타는 그녀의 병이 이른바 '카미다리'(神祟り)라고 했다. 신의 부름을 받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신병'이란 얘기였다.

입무식이 이어지면서 어둠이 깔린다. 붉은 끈으로 엮인 북을 치면서 의식이 이어졌다. 에이코 씨는 병원에서 오래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를 보지 못했다. 이대로는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던 차 마을 지도자들이 마침내 입무식을 허락했다. 근대화 방식에 맞지 않는다며 무당이 되는 의식을 막아왔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사람을 죽게 놔둘 것이냐는 하소연에 못이기는 척 허락을 내준 것이다.
오늘의 입무식을 위해 몰래 병원을 빠져나온 에이코 씨는 그래서 더 절박했다. 그녀는 밤이 깊도록 눈물을 쏟아냈다. 입무식을 치르지 못해 겪었던 오랜 고통과 무당이 되어야 하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짚어내는 듯 슬픈 노랫소리가 둔탁한 북소리를 타고 제당을 울렸다.

주변에 둘러앉아 이를 지켜보던 마을 여성들도 하나둘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비켜난 성소에 모여, 서로의 짊어진 숙명을 위로하는 여성들의 연대처럼 느껴졌다.
오늘날 가민츄를 비롯한 오키나와의 고유 신앙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류큐 왕국이 메이지 정부에 병합된 뒤 토착 신앙은 국가 신토(神道) 체제 아래 철저히 탄압받았고, 전후 미군 기지가 들어서며 마을의 숲과 제당은 무참히 헐렸다. 에이코 부인의 입무식에 참석한 여성들의 눈물은 어쩌면 점점 희미해져 가는 오키나와 전통의 애달픈 흐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굳게 닫힌 제당(祭堂). 문 앞에선 마을 사람들이 남자들의 출입을 막아선다. 의식을 취재하러 온 사진가도, 외지 학자들도 예외는 없다. 투박하게 엮인 나무 기둥 뒤, 오키나와 북부 네로메(根路銘) 마을 제당 안의 성소 ‘이비'(イビ)는 철저히 여성만의 공간이었다. 1988년 여름이었다.
나무로 엮인 제당 앞에 나란히 선 네 명의 여성 중 제일 왼쪽이 이날 입무(入巫)하게 되는 오시로 에이코 씨다. 의식을 맡은 여성들이 의례에 쓰일 검을 들고 함께 사진 촬영에 응했다.
당 안에서는 에이코 씨가 무릎을 꿇고 앉으면 신병의 고통을 끊어내고 신의 사제인 ‘가민츄(神人, かみんちゅ)’로 거듭나는 입무식(入巫式)이 시작된다. 류큐 왕국 시절부터 오키나와에서는 남자가 정치를, 여자가 제사를 맡아 왔다. 정치 권력은 남성에게, 종교 권력은 여성에게 나뉘어 있던 독특한 이원 구조다. 남성들의 제당 출입이 금지된 이유다.
그 배경에는 '오나리가미'(おなり神)라 불리는 오키나와의 신앙 체계가 있다. 여성(특히 자매)이 짙은 영적 힘을 지니고 혈연 공동체와 남성(남자 형제)을 수호한다는 것이 오키나와섬 사람들의 강한 믿음이다. 이에 따라 마을 대소사를 관장하는 니즈츄(根人)는 남성이지만, 신과 소통하며 제의를 집전하는 니가미(根神)나 노로(ノロ) 같은 사제는 반드시 여성이 세습하게 된다.
입무식의 풍경을 보면 한국의 내림굿이 연상되는 부분도 있다. 평범한 인간의 때를 벗고 신의 세계로 진입하는 첫 단계이기 때문에 우선 신이 내리는 새 무당이 머리부터 씻고 단장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선배 가민츄가 맑은 물로 에이코 부인의 머리를 감기고 정갈하게 빗겨 비녀를 꽂아 묶었다.
이어서 선배 가민츄는 낡은 검을 꺼내 든다. 이 검으로 에이코 씨의 어깨를 번갈아 누르고 허공을 가른다. 잡귀를 물리치고 모셔야 할 신만 받아들이라는 주술적 행위다. 한국 내림굿의 비수거리에서 장군칼을 휘둘러 액을 막고 잡신을 쳐내는 의식이 또 한 번 떠오른다.
에이코 부인은 1987년부터 살이 빠지고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앓아누웠다. 백방으로 노력해도 차도가 없자 개인의 운명을 점치고 질병을 다루는 '유타'(ユタ)를 찾아갔다. 유타는 그녀의 병이 이른바 '카미다리'(神祟り)라고 했다. 신의 부름을 받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는 '신병'이란 얘기였다.
입무식이 이어지면서 어둠이 깔린다. 붉은 끈으로 엮인 북을 치면서 의식이 이어졌다. 에이코 씨는 병원에서 오래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를 보지 못했다. 이대로는 죽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던 차 마을 지도자들이 마침내 입무식을 허락했다. 근대화 방식에 맞지 않는다며 무당이 되는 의식을 막아왔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사람을 죽게 놔둘 것이냐는 하소연에 못이기는 척 허락을 내준 것이다.
오늘의 입무식을 위해 몰래 병원을 빠져나온 에이코 씨는 그래서 더 절박했다. 그녀는 밤이 깊도록 눈물을 쏟아냈다. 입무식을 치르지 못해 겪었던 오랜 고통과 무당이 되어야 하는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짚어내는 듯 슬픈 노랫소리가 둔탁한 북소리를 타고 제당을 울렸다.
주변에 둘러앉아 이를 지켜보던 마을 여성들도 하나둘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남성 중심의 세계에서 비켜난 성소에 모여, 서로의 짊어진 숙명을 위로하는 여성들의 연대처럼 느껴졌다.
오늘날 가민츄를 비롯한 오키나와의 고유 신앙은 점차 자취를 감추고 있다. 류큐 왕국이 메이지 정부에 병합된 뒤 토착 신앙은 국가 신토(神道) 체제 아래 철저히 탄압받았고, 전후 미군 기지가 들어서며 마을의 숲과 제당은 무참히 헐렸다. 에이코 부인의 입무식에 참석한 여성들의 눈물은 어쩌면 점점 희미해져 가는 오키나와 전통의 애달픈 흐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