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이라는 삶의 대내림, 황해도 내림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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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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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의 삶에는 희망이 없지만 남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어야 하는 삶, 살아있는 사람은 물론이고 불쌍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나 귀신에게까지도 삶과 죽음의 세계의 질서를 가르쳐주고 위로해주어야 하는 것이 강신무들의 사명이다." - 김인회, 한국의굿 '황해도 내림굿' 편 中


1980년 미국 유학중이던 채희아는 1년간 원인 모를 병을 앓게 된다. 그녀가 병이 '신병(巫病)'이란 걸 깨달은 건 자료 조사차 한국에 돌아왔을 때. 황해도 내림굿 녹화본을 보면서 온 몸에 발작이 일어났다.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중이었던 이 엘리트 여성은 이후 무당의 길을 결심하게 된다.


1981년 6월 23일, 황해도 내림굿

두 손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이내 온몸이 흔들린다. 허공에 뜬 듯 몸이 뒤로 젖혀지고 격렬한 도무(蹈舞, 펄쩍 뛰며 추는 춤)가 이어진다. 서울 정릉 옆 삼각산, 채희아가 황해도 큰만신 김금화의 신딸로서 무당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첫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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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맞이굿이 끝나면 내림굿은 석관동 굿당으로 이어진다. 먼저 몸에 붙은 허튼귀신을 떼어내는 허침굿이 열린다.마음의 부정을 씻어내고 온전한 신을 받기 위한 의식이다.채희아가 흰콩과 좁쌀, 삼색 헝겊이 든 광주리를 머리에 인다. 마당을 빙글빙글 돌다 광주리를 등 뒤로 휙 던진다. 광주리가 엎어지면 귀신이 아직 덜 먹어 곁을 떠나지 않은 것. 바르게 설 때까지 던져야 하는데, 여덟 번 만에야 광주리가 바로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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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신을 걷어낸 뒤, 물이 가득 담긴 동이에 흰 수라천(무명)을 밀어 넣는다. 사해 용왕을 부르는 신어머니의 축원이 울려 퍼진다. 무명이 물밑으로 가라앉으며 뽀글뽀글 물방울이 솟아오른다. 무당들은 이 맑은 물방울을 명진주, 복진주라 부른다. 진주가 많이 솟을수록 훗날 큰 만신으로 널리 불려 다닌다고 점친다.

본격적인 내림굿이 이어진다. 채희아가 무아경 속에서 일월대(신의 상징물)를 가슴에 안고 춤을 춘다. 김금화가 마당 구석구석 감춰둔 부채와 방울을 찾아내야 한다. 긴 춤 끝에 방울을 거머쥐고 흔들자, 비로소 공수(신의 뜻을 전하는 무당의 말)가 터져 나온다. 이어서 맑은 정화수로 채희아의 헝클어진 머리를 적셔 빗긴다. 단정하게 쪽을 찌고 비녀를 단단히 꽂아준다.

머리를 다시 빗겨 쪽을 찌고 비녀를 꽂아 신의 세계로 들임을 알리는 의식

이제 그는 인간의 세계에도, 신의 세계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다. 오직 신과 인간을 잇는 중개자로서 살아간다. 자신의 짙은 불행을 껴안고 타인의 고통을 치유하는 삶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세속의 인간이 신성한 능력자로 전환되는 순간이자, 신어머니와 모녀의 연을 단단히 맺는 통과의례다.

굿판의 절정, 비수거리(솟을굿)가 다가온다. 마당 한가운데 칠성단을 세웠다. 시퍼렇게 날이 선 작두가 준비된다. 김금화가 먼저 칼을 휘두르며 작두 날을 얼르는 시범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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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아가 작두날을 자신의 뺨과 입술에 차례로 대보며 시험한다. 신이 단단히 오르자 망설임 없이 작두 위로 펄쩍 뛰어오른다.

맨발로 칼날을 딛고 서서 오방신장기를 거세게 흔든다. 위풍당당한 첫 호령이 좁은 마당을 쩌렁쩌렁 울린다. 어색하던 첫 공수는 오간 데 없고 사방을 굽어보는 만신의 기세가 놀랍다. 억눌린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치유자이자 사제(司祭)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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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간 무당은 가장 멸시받고 천대당하는 밑바닥 계층이었다. 하지만 신병은 빈부귀천이나 지식의 고하를 가리지 않는다. 평범한 운명에서 튕겨져 나온 이들만이 이 고독한 길에 들어선다.

이날 만신이 된 채희아는 김수남 작가에게 공수를 내린다.

"사진을 찍으면서 사는 것을 천하게 생각하는 나라에서 더우기 굿판을 찾아다니며 굿 사진을 찍노라면 천시받고 구설수깨나 쫓아다닐 것이다. 그러나 너의 하는 일은 하늘이 알고 신의 도움이 있을 것이다."

하늘이 알고 신이 도운 덕분인지 천대받던 무속신앙은 이제 전통문화의 한 갈래로 인정받게 됐다. 

그 뒤에는 싸구려 속임수로 돈을 긁어내는 '돌팔이 무당', '선무당'이 횡행하던 시기에도 묵묵히 남다른 인품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온 만신들이 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서해안 배연신굿과 대동굿 보유자인 김금화 만신은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큰 만신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이 사진들은 황해도 큰 만신 김금화에 대한 기록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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