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4일, 김수남 사진가는 태국 치앙라이 인근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리수족의 신년 행사를 취재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타계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습니다. 1967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선물로 받았던 양안리플렉스 카메라가 그와 사진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이후 사용하는 장비는 바뀌었지만 카메라 렌즈 뒤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작가의 시선은 변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짙은 아쉬움, 한 때 아름다웠던 문화를 기록으로 붙잡아두고 싶다는 강한 열망은 작가가 40년 동안 카메라를 붙잡고 세상을 기록하는데 매진하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김수남이라는 이름은 한국의 굿과 아시아의 전통문화를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알려져 있지만, 연세춘추와 월간지 세대를 거쳐 동아일보에 입사할 때까지 작가의 관심은 다양했습니다. 어찌 보면 젊은 시절 당연히 갖게 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커다란 망원 렌즈를 둘러메고 철새를 촬영하던 이 때의 모습은 이후의 작품 활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김수남 작가는 로버트 카파의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수없이 인용합니다. 굿과 사람으로 시끌벅적한 현장을 떠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 렌즈를 들이밀었던 작가에게 이런 망원렌즈는 이 때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장비였죠.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에겐 자연스럽게 전통문화와 가까워질 기회가 생깁니다. 동아일보 출판사진부가 전통문화를 기록하고 기사로 소개하는 일에 열심이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명인들을 취재하게 된 덕분이었죠. 사라져 가는 문화를 아쉬워하던 작가에겐 딱 맞는 일이었습니다. 사진 가운데의 평범한 바닷가 아낙처럼 생긴 분은 옷을 갈아입고 무대에만 오르면 카리스마 넘치는 무용가로 변신하는 곱사춤과 창무극의 명인 공옥진 선생님입니다. 남아있는 공연 사진의 강렬함을 떠올리면 이런 평범한 모습이 오히려 낯설어집니다.

당대 최고의 명창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김소희 명창과 함께. 김소희 명창은 1995년 사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는데, 전통예술인이 받았던 첫 금관문화훈장이기도 했습니다.

가야금 명인 김죽파 선생님과 함께. 김죽파 선생님은 가야금 산조로 유명한데 '여성 가야금 산조의 물꼬를 튼 사람은 바로 죽파'라고 할 정도로 본인의 연주 못잖게 후학 양성에도 활발하셨던 분입니다. 여성 연주자의 선구자 격이셨죠.
2006년 2월 4일, 김수남 사진가는 태국 치앙라이 인근 산악지역에 거주하는 리수족의 신년 행사를 취재하던 중 뇌출혈로 쓰러져 타계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흘렀습니다. 1967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선물로 받았던 양안리플렉스 카메라가 그와 사진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이후 사용하는 장비는 바뀌었지만 카메라 렌즈 뒤에서 세상을 바라보던 작가의 시선은 변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짙은 아쉬움, 한 때 아름다웠던 문화를 기록으로 붙잡아두고 싶다는 강한 열망은 작가가 40년 동안 카메라를 붙잡고 세상을 기록하는데 매진하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김수남이라는 이름은 한국의 굿과 아시아의 전통문화를 담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알려져 있지만, 연세춘추와 월간지 세대를 거쳐 동아일보에 입사할 때까지 작가의 관심은 다양했습니다. 어찌 보면 젊은 시절 당연히 갖게 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커다란 망원 렌즈를 둘러메고 철새를 촬영하던 이 때의 모습은 이후의 작품 활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기도 합니다. 나중에 김수남 작가는 로버트 카파의 "만약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수없이 인용합니다. 굿과 사람으로 시끌벅적한 현장을 떠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 렌즈를 들이밀었던 작가에게 이런 망원렌즈는 이 때 아니면 사용하지 않는 장비였죠.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에겐 자연스럽게 전통문화와 가까워질 기회가 생깁니다. 동아일보 출판사진부가 전통문화를 기록하고 기사로 소개하는 일에 열심이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명인들을 취재하게 된 덕분이었죠. 사라져 가는 문화를 아쉬워하던 작가에겐 딱 맞는 일이었습니다. 사진 가운데의 평범한 바닷가 아낙처럼 생긴 분은 옷을 갈아입고 무대에만 오르면 카리스마 넘치는 무용가로 변신하는 곱사춤과 창무극의 명인 공옥진 선생님입니다. 남아있는 공연 사진의 강렬함을 떠올리면 이런 평범한 모습이 오히려 낯설어집니다.
당대 최고의 명창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은 김소희 명창과 함께. 김소희 명창은 1995년 사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는데, 전통예술인이 받았던 첫 금관문화훈장이기도 했습니다.
가야금 명인 김죽파 선생님과 함께. 김죽파 선생님은 가야금 산조로 유명한데 '여성 가야금 산조의 물꼬를 튼 사람은 바로 죽파'라고 할 정도로 본인의 연주 못잖게 후학 양성에도 활발하셨던 분입니다. 여성 연주자의 선구자 격이셨죠.